부여의 낙화암 전설
link  관리자   2022-01-03

부여하면, 부소산이나 낙화암이나 고란사나, 백마강을 먼저 떠올린다.

낙화암은 부소산성(반월성)이 나당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자 삼천궁녀가 수십길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에는 사람이 떨어져 죽은 바위라는 뜻에서 이곳을 '타사암'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 누군가에 의해 꽃이 떨어진 바위라는 뜻의 낙화암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낙화암 절벽 중턱에는 주홍색의 '낙화암'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글씨는 우암 송시열(1607-1689)의 글씨로 그의 형 송시묵이 1654년 부여 현감으로 지낼 때 쓴 것으로 추정된다.

낙화암 절벽 아래에는 아담한 절 고란사가 있다. 백제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 자세한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절 뒤 바위틈에 고잘정이 있으며, 그 위쪽 바위틈에 고란초가 서식한다.

백제의 왕들은 이 고란정 약수를 즐겨 마셨는데, 그때마다 고란초 잎을 한 닢씩 띄워 마셨다고 한다. 거기에는 '어린이가 된 할아버지'의 전설이 전해 온다.

옛날옛적 소부리의 한 마을에 금슬 좋은 노부부가 살았는데, 자식이 없었다.

할머니는 이제라도 회춘하여 자식 갖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어느날 할머니는 일산(금성산)에 사는 도사로부터 고란사 뒤 약수와 고란초에 대한 효험을 듣게 된다.

다음날 새벽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그 약수를 마시고 오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저녁이 늦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일찍 할머니는 약수터로 찾아갔다. 한데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갓난아기가 할아버지 옷을 입고 누워 있었다.

할머니는 순간 도사가 약수 한 잔을 마실 때마다 3년씩 젊어진다는 말을 할아버지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갓난아기를 안고 집에 돌아온 할머니는 고이 갓난아기를 길렀으며, 그 아이는 훗날 나라에 큰 공을 세워 최고의 벼슬인 좌평에 올랐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고란사는 원래 백제의 왕들을 위한 정자였다고도 하고, 궁중의 내불전이었다고도 한다.

또한 백제가 멸망할 당시 낙화암에서 사라져 간 넋을 위로하기 위해 고려 현종 19년(1028)때 지은 사찰이라고도 한다.

















윤재환의 신 부여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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